이정희 대표의 사퇴로 위기 봉합 성공!
총선 다가올수록 표 결집 효과는 ‘오리무중’

불법 경선 논란으로 자칫 와르르 무너지나 싶었던 야권연대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후보 사퇴 및 불출마로 깔끔한 봉합에 성공했다. 이에 양당은 지난 25일 총선과 관련한 공동선대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선거체제에 들어갔다. 한명숙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최고위원 7명 전원, 이정희 공동대표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4명 전원이 위원장을 맡기로 했으며, 선대위는 앞으로 유세도, 공약도, 홍보도 공동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다가올 총선에서 ‘야권연대’의 압도적 우세를 점치는 국민은 이제 많지 않다. 지지자들의 기대와 달리 단일화 협상은 물론 공천 과정에서도 상당한 잡음을 일으키며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겼기 때문이다. 야권의 이 같은 안타까운 행보는 파산 일보 직전이던 새누리당이 오히려 힘을 비축할 시간과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지지율 격차가 줄어드는 현상은 분명 야권연대가 고민해야 할 숙제다.

야권의 도덕성 흠집 낸 ‘전화 여론조사’ 파문
지역구 경선 투표가 이토록 심하게 야권의 발목을 잡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성’을 여권에 대한 가장 큰 차별성으로 앞세우는 야권인 만큼 그 파괴력은 굉장했다. 이정희 대표는 지난 16일 민주통합당의 김희철 예비후보와 관악을 지역의 야권연대 후보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당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본인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여론조사는 지역구 주민에게 자동응답전화를 거는 방식이었으며, 조사결과 이 대표의 보좌진이 “이미 집계가 끝난 연령대 외에 다른 연령대를 선택해 응답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 결과 조작을 유도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정희 대표의 첫 대응은 재경선을 치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정희 대표는 20일 국회기자회견을 통해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는 대부분 집 전화라 50대가 일찍 마감돼 당원들에게 20～30대라고 응답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경위를 설명했다. 또, 전화여론조사 당시 후보자의 참관인이 배석할 수 없었음에도 50대 이상 연령대가 마감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대해선 “당원들에게 여론조사 전화가 와서 50대라고 하면 여론조사 회사에서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이미 마감됐다고 말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정희 대표는 이어 “이 문자 때문에 경선 결과에 영향이 있다고 확언할 수 없다"며 "하지만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이 경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면 재경선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여론조사 샘플이 1000명인데 문자를 보낸 사람이 200명이면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여론조사 전화가 200명에게 다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확언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한편, 관련자 문책에 대해선 “야권연대에 영향을 미친 만큼 무거운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면서도 후보직 사퇴와 관련해선 "문자메시지가 무차별적이고 조직적으로 발송됐으면 모르지만 뿌려진 문자메시지는 한정적이었다"며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버티기 포기한 이정희 대표의 결단
그러나 이정희 대표의 이러한 대응은 즉각 전국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포털은 야권연대와 진보진영의 순수성과 도덕성을 성토하는 기사와 댓글로 도배되었고, 이정희 대표에 대한 비난과 실망 역시 지지층을 막론하고 불을 뿜었다. 당시 이 대표의 불출마 배경에는 여론악화로 인한 총선에서의 악영향과 이번 사태로 자칫 야권이 분열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되었다.
그러나 이후 다른 지역구에서도 경선에 탈락한 민주통합당 후보들이 여론조사를 문제 삼기 시작하자 결국 이정희 대표는 버티기를 포기했다. 결국 지난 23일, 이정희 대표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11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많은 분들이 긴 시간 애써 만들어온 통합과 연대의 길이 저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며 현 상황에 통감했다. 이어 “야권연대를 만들어냈다는 잠시의 영광보다 야권연대의 가치와 긍정성을 훼손한 잘못이 큰 장본인으로써 앞으로 부족함을 채우고 차이를 좁히며 갈등을 없애는데 헌신하겠다”며 “전국 각지의 야권 단일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조금만 빨랐더라면 VS 야권연대 살렸다
그런데 이 대표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또 한 번 거센 반응을 일으켰다. ‘야권연대를 살렸다’는 입장과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면 빨리 결정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그것이다. 또 23일 오전까지만 해도 이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히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더욱 반향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22일 밤 이 대표와 긴급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이 대표의 사퇴 발표 후 트위터에 “이정희 대표가 야권연대를 구했습니다. 스스로를 희생한 아름다운 결단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관심을 모았다.
실제로 문재인 상임고문과의 회동이 이 대표의 사퇴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지난 22일 야권연대가 균열을 보이는 위기 속에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서울에 올라왔고, 이날 광주를 방문 중이던 이정희 대표 역시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상경했기 때문이다. 문 고문은 이 자리에서 이 대표의 사퇴나 후보 교체를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현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전한 뒤 야권연대가 유지돼야 한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번 파문의 발단이 된 여론조사 조작에 대한 사실 확인과 평가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이 사태가 한 지역구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확산된 것도 여론조사 과정에 대한 불신이 어쩌면 야권연대 전체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당세도 다르고 사정도 다른 정당들이 단일화를 위한 방식을 일괄적으로 만들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위기 속 ‘공동선거대책위원회’ 발족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지난 25일 야권 단일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회를 발족했는데, 이것은 ‘이정희 파문’으로 가라앉은 야권연대를 복원하기 위한 후속조치에 의한 것이다. 이날 한명숙 대표는 이정희 대표의 결단에 고마움을 표했고, 이 대표는 야권연대를 지키기 위해 전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명숙 대표는 “이정희 대표가 야권연대를 위해 크나큰 결단을 해줘 얽힌 실타래가 풀렸다”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통합진보당 지도부와 당원 동지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정희 대표가 회담을 제안했지만 고통받는 이 대표에 더 큰 상처와 부담을 안기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 생각해 만나지 못했다”며 “대신 문재인 상임고문에 중재를 맡겼다”고 설명했다.
또 “백혜련 후보와 여러 쟁점 지역의 후보들 또한 야권연대를 위해 희생을 자처했다”며 “비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듯 우리는 흔들릴 수 없는 연대와 단결로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또 “그동안 국민들을 실망시켜 죄송하다. 하지만 민생을 파탄낸 MB정권과 새누리당을 이번에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에 호소한다”며 “이제는 잘하겠다. 뜨거운 성원과 지지를 보내주면 국민이 이기는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정희 대표는 “어려운 과정을 만들어준 한명숙과 지도부에 감사와 신뢰의 인사를 드린다”며 “야권연대를 위해 자신을 던진 용퇴 후보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본궤도에 오른 만큼 힘일게 달려가겠다”고 덧붙였다. 또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 선대위원장으로서 국민의 힘을 모아 야권연대 붕괴 시도에 전면에 나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대표는 한편 “야권연대의 파괴력 앞에 수구 기득권 세력과 보수 언론들이 분열을 일으키려 하고있다. 안타깝게도 일부 야권과 진보 진영 내 세력도 이들의 색깔 공세에 동조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스스로 다시 돌아보고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야권연대의 총선 승리 어렵다”는 지적 늘어
그렇다면 야권연대의 파괴력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진다. 특히 이정희 대표의 사퇴로 “표 결집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긍정론과 “뒤늦은 사퇴로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부정론이 공존하고 있다. 양당은 현재 별도의 선거대책본부를 두지 않는 대신 상호지원을 위한 실무협력체계를 만드는 한편, 단일후보 멘토단과 공동정책공약추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멘토단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선거 당시의 박원순 후보측 멘토단(18명)과 맞먹는 규모로 꾸려질 예정이며 소설가 이외수씨 등 온라인에서 영향력이 높은 인사들이 총출동할 것으로 보여 관심을 모은다. 양당은 최근 하향세를 그리던 야권연대 효과가 이 공동대표의 사퇴를 계기로 바닥을 찍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29일 서울 광화문에서의 첫 공동유세를 반등의 계기로 삼았다.
야권으로서는 일단 표 결집 효과가 본격적으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민주통합당의 한 당직자는 “이 대표가 후보직 고수를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우리뿐 아니라 통합진보당도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며 “새누리당과의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번 주부터 후보 단일화 효과가 복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치권의 또 다른 인사는 “이정희 사태로 진보의 도덕성에 상처가 나면서 이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야권 단일 후보에 표를 모아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양당의 지지율이 한 후보로 결집되는 데 한계를 보였는데, 이번에는 실망한 유권자들마저 늘어나 그 마음을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야권의 한 인사는 “(공천에서의 내홍과 야권연대 잡음 등으로) 1월에 비해 야권이 우세를 보이던 곳이 백중세로, 경합을 벌이던 곳이 열세로 바뀌었다"며 “현재는 여소야대 가능성을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는 지지율은 그나마 안심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6일 발표한 3월 셋째 주 주간 정례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2.0%p 하락한 37.4%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민주통합당은 지난주와 큰 격차 없이 33.3%, 통합진보당은 1.8%p 상승한 7.5%를 기록하며 여야간 지지율 격차가 줄였다. 연이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정희 대표의 불출마 선언 후, 새누리당과 격차를 좁힌 것이다. 또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지지율을 합한 ‘야권연대 지지율’은 새누리당 지지율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동일안 여론조사에서 지난주 새누리당 39.4%, 민주통합당(33.7%)+통합진보당(5.7%) 합산 지지율 39.4%로 동률을 이뤘던 여야 지지율 격차는 이번 주 야권연대 합산 지지율이 40.8%로 새누리당의 37.4%를 앞질렀다. 또한 리얼미터 일일조사에서는 이정희 대표가 후보 직을 사퇴한 23일 새누리당 38.0%, 민주당 37.2%로 정당 지지율 차이가 0.8%포인트까지 좁혀졌다. 그러나 하루 뒤인 24일 조사에서는 새누리당 38.6%, 민주당 34.6%로 다시 차이가 벌어졌다. 리얼미터는 “여당은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검찰 조사로 지지율이 하락했고, 야권은 여론조작 파문으로 주 중반까지 지지율이 하락하다 주 후반 지지율이 반등하면서 여당과의 격차를 줄였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견고한 지지 세력의 존재는 야권연대가 총선이 끝날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전망이다. 과연 이러한 지지를 투표 당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는,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 동안 발휘될 집중력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취재_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