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만의 퇴장, 첫 野 여성 대표의 ‘영욕’
고비 때마다 리더십 한계 노출
‘자중지란’ 야권연대, 대선 전략 수정 불가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 당사 대회의실에서 4.11총선 패배에 따른 당 대표직 사퇴를 표명했다. “이명박 정권 심판에 공감하는 수많은 시민들을 투표장으로 모시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며 “이 모든 부족함은 대표인 저의 책임”이라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과 함께 與野 첫 여성 수장 시대를 열었던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그러나 한 대표는 당 대표직에 오른 지 불과 90일 만에 물러나게 됐다. 대표 취임 당시만 해도 압도적이었던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은 총선의 고비마다 한 대표 자신의 리더십 부재로 가라앉았고, 그것이 결국 총선 패배로 이어지자 책임을 진 것이다. 승리를 자신했던 만큼 패배의 아픔은 더 크다. 야권으로서는 대선 전략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화합 정치의 표본
한 대표는 지난 1월 15일 당원과 시민 80만 명이 참여한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득표율 1위로 당대표에 선출되면서 정치 일선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른바 ‘뇌물 로비’ 사건으로 2년여의 시간을 사실상 정치권 밖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컴백에 성공한 것이다. 대표적 ‘친노’ 정치인임에도 구 민주당과 시민사회, 노동 진영 모두의 고른 지지를 얻은 결과였다.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리기도 하는 한명숙 대표는 16대 때 비례대표로 국회에 첫 입문한 뒤 초대 여성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을 거쳐 첫 여성 국무총리까지 화합·관리형 정치인이다. 그가 민주통합당의 첫 대표로 낙점된 것도 이러한 이유가 컸다.

현실은 논란과 분란으로 점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저축은행 비리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임종석 전 의원을 사무총장에 기용하면서 취임 초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 조용환 헌법재판관 인준 부결 사태로 리더십에 흠집이 나기 시작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주장으로 '말바꾸기 논란'에 휘말렸다.
총선 정국에서도 공천심사위원회 구성 등을 두고 구 민주계, 한국노총,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이해찬 상임고문이 한 대표의 독단적 당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다 탈당 의사를 내비치고 박영선 최고위원이 유재만 변호사 등의 공천 배제를 비판하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는 등 당내 분란이 심화됐다.

‘전략 미스’로 리더십 한계 드러내
이 같은 사태를 겪으며 연초 새누리당을 압도했던 당 지지율은 급한 하락곡선을 그렸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국단위 선거에서 야권 연대를 이뤄내는 등의 성과를 남겼지만 경제·복지 정책에서 지나친 좌편향으로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전략미스'를 저질렀다는 지적도 나왔다. 선거전 종반에 터진 김용민 후보 막말 파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가장 큰 실책이다.
아울러 반MB(이명박)·정권심판론으로 지지층을 응집했어야 함에도 초점을 박 위원장에게 이동한 전략부재도 패착의 요인으로 꼽힌다. 한 대표는 취임 때부터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과의 대결 구도를 설정했다. "내가 독재와 싸우며 감옥에 있을 때 박근혜는 청와대에 있었고, 내가 99%와 함께 있을 때 박근혜는 1%의 부자증세도 반대했다"며 박 위원장을 성토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총선 패배로 '박근혜 대세론'만 굳게 해준 셈이 됐다.

시련 이겨낼 지 주목
정치 전문가들은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치러지는 정권교체를 앞둔 상황에서 관리형 리더십보다는 대여 투쟁을 이끌어갈 전투형 리더십이 더 어울렸다는 지적이다. 또 당내 잡음이 발생할 때마다 여론을 지켜보고 측근 인사를 감싸는 모습은 한명숙 체제에 대한 회의론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명숙 대표는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으로 백의종군할 계획이다. 한 대표는 퇴임 기자회견에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당원 한 사람으로 정권교체 위해 혼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검찰의 집요한 수사로 두 차례에 걸쳐 기소됐지만 연달아 무죄 판결을 받았던 한 대표가 또 한 번의 시련을 이겨내고 정치적 재기의 기회를 잡을지 주목된다.

취재_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