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푸틴 정서에도 불구, 야권 분열로 승리
‘강한 러시아 만들기’ 강조할 듯

대통령 3선 금지 조항에 밀려 지난 4년간 총리로 물러나 있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4일 치러진 러시아 대선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대통령 집권 3기를 열었다. “우리는 정복자들의 국가다. 조상 대대로 그런 유전자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는 다시 승리할 것이다" 4년 만에 대통령 복귀가 확정된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 선거 유세 도중,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처럼 '강한 러시아주의'를 피력한 바 있다. '21세기 차르(황제)'로 불리는 푸틴은 집권 3기에도 소련제국 부활을 꿈꾸며 대내외 정책에서 한층 강경한 노선을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푸틴의 집권이 이전과 달리 전 국민의 전폭적 지지 속에 출범하지는 못한 만큼, 과거처럼 정국 전체를 주도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완전한 성공'에 비유된 3선
푸틴 총리는 4일 대선 투표 후 자신의 '완전한 승리'를 선언했다. AFP 및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푸틴 총리는 투표가 끝난 뒤 모스크바 크렘린 궁 인근 마네슈 및 혁명 광장 등 11만여 명의 지지자가 모인 집회에서 이같이 선포했다. 푸틴 총리는 “나는 선거에서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국민에게) 약속했고 우리는 이겼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공개적이고 정직하게 싸워 이겼다"고 덧붙였다.
푸틴은 또 “이번 선거는 대통령 선거일 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시험이었다"며 “(특히) 정치적 성숙 및 독립성에 대한 시험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누구도 러시아에 아무것이나 강요할 수는 없음을 보여줬다"며 “러시아 국민들은 개혁에 대한 희망과 러시아의 주권을 찬탈하려는 정치적 도발을 구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또 “그 같은(러시아의 권력 및 주권을 뺏겠단) 시나리오는 러시아에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총리에 앞서 먼저 연단에 오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이번 승리는 우리나라가 더욱 현대화되고 독립적인 강국이 되는 데 필요하다"며 “우리는 이 승리를 아무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저녁 9시께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진 집회는 러시아 국기가 새겨진 고무풍선들을 하늘로 날려보내는 것으로 끝났다. 이들 지지자는 풍선에 푸틴의 반대자를 상징하는 들쥐 모양의 작은 인형을 매달았다. 투표 뒤 두 차례에 이은 출구조사에 따르면 푸틴 총리의 득표율은 59%로 사실상 1차 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됐다. 중앙선관위의 중간 개표 결과 득표율은 60%를 넘었다. 다만 현재 인터넷을 중심으로 지난해 12월처럼 이번 선거도 공정하지 못했다는 항의가 쇄도하고 있다. 골로스 등 선거감시 단체 웹사이트에선 부정선거로 의심되는 사례가 모스크바에서만 2700여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강한 러시아 만들기 계속된다
전문가들은 푸틴이 집권 3기에서도 이전과 같은 정책 노선을 계속 견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미국 등 서방 세계가 패권을 쥔 현 국제정치 체계에서 러시아가 이들에게 끌려 다니지 않도록 더 강한 러시아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푸틴은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 또한 서방에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푸틴은 지난달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미사일 방어망(MD) 구축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러시아의 군사예산을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방에 비해 낙후된 산업을 단기간에 발전시키려는 국가주도형 경제 개발 즉 `국가자본주의 정책`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대선 전 한국의 성공 사례를 언급하며 막대한 규모의 자본과 기술 개발이 요구되는 첨단 산업 분야서 정부가 주도로 나서지 않으면 러시아 경제가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푸틴은 집권 2기에도 에너지, 항공, 정보통신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대규모 국영 기업을 만들어 단기간에 낙후한 산업을 일으키려 했던 경제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반대파 설득이 과제
하지만 `총리퇴임-개헌-3선 성공-연임`으로 이어지는 그의 장기집권 시나리오가 차츰 현실화되자 이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야권은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그의 당선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야권 연합은 5일 대규모 부정선거 규탄대회 이후 지속적으로 반정부 시위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푸틴의 집권 3기 최대 과제는 강한 러시아 만들기보다 반대파 끌어안기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SNS 등 인터넷과 야당을 중심으로 부정선거 의혹이 쏟아지는 등 내정의 불확실성은 대선이 끝나도 지속될 전망이다. 러시아 트위터에는 선거인 명부 조작과 부정투표를 입증하는 사진과 동영상도 쇄도하고 있다. 우랄 인근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의 선거감시단원이라고 밝힌 한 남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재자 투표제도를 악용, 신분을 속여 중복 투표를 하는 선거부정행위자들이 적발돼 경찰에 넘겨졌다"는 글과 함께 동영상을 올렸다.
또, 투표소 마다 각 정당이 1명씩 배치하는 투표 감시원을 바꿔치기하는 사례도 신고 됐다. 모스크바 인근 모스크바 주에서는 가짜 야당 투표 참관인이 투표소에 미리 나와 진짜 참관인의 투표소 출입을 막는 사례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군인들이 상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투표를 하는 동영상도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다.
이에 따라 푸틴은 집권 3기 기간 개헌과 선거법 개정, 조기 총선 등 야권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지는 않겠지만 사회 안정을 위해 지난해 12월 총선 이후 분출된 시민사회의 자유화 및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는 차원에서 일정 정도의 개혁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취재_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