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 탈북자 9명 지난달 강제북송
딜레마 빠진 국내 여론
국회 외교통상위, 적극 대처 촉구

중국 당국이 최근 체포한 탈북자 9명을 지난달 북송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그렇지만 그간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가운데 하나였던 이 문제가 이번 기회로 새삼 주목을 받게 돼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이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 당국과 여론의 향배는 조금은 서툰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대안이 모색되는 동시에 거리에서는 연일 집회가 이뤄지고 있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인데다 이런 전례가 없어서인지 최상의 해결책 마련은 아직 불확실하다. 특히 중국 정부의 눈치를 고려해야 하는 엄연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마침내 양지로 튀어나온 ‘탈북자 북송’ 문제. 바로 지금이 이 문제를 새롭게 정립할 최적의 시기다. 

‘시범 격으로 사형될 것’이라는 소문 파다
현재, 올 1월을 기준으로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 수는 2만3천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에는 중국 내 탈북자 규모가 최대 수십만 명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정부에 의한 탈북자 강제 송환 문제가 ‘비인도적인 처사’라는 논란 속에 커다란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미 지난 2월 8～12일 사이에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자만 31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미 3∼9명이 강제로 북송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 탈북자는 “함경북도 국경에 사는 오빠에게서 전화를 받았다.”며 “2월 초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갔다가 체포된 사촌 언니가 지난 주말(18～19일) 북송돼 온성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해 왔다”고 밝혔다. 이 탈북자에 따르면 사촌 언니 김모(31)씨를 포함한 일행 9명은 한국행을 위해 중국 옌지에서 창춘(長春)으로 이동하다 중국 공안에 붙잡혔다고 한다. 그는 “언니가 투먼(圖們) 교두를 통해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들었다”며 “현재 온성 보위부에서 조사 중이라고 담당 보위지도원이 이번 주 초 오빠에게 통보해줬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한편, 이와는 별개로 탈북자 단체인 NK지식인연대 역시 이날 “중국 당국이 억류하고 있던 34명의 탈북자 가운데 3명을 이미 북송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이들 3명은 중국 창춘(長春)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체포돼 지난 20일 북송됐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요원들을 비롯한 보안원과 당 간부들이 이들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온갖 협박을 하고 추가 조사를 하고 있다. 주민들 속에서는 시범 격으로 사형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즉각 대처 나선 국회 외교통상위
이 같은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국회 외교통상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 24일 즉각 긴급 현안 보고를 갖고 관계 당국의 적극적 대처를 촉구했다. 먼저 새누리당 안상수 의원은 “정부가 미온적인 '조용한 외교'를 계속 하게 되면 중국이 이런 행위를 반복할 것이고,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는데 무력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좀 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정몽준 의원은 역시 “중국하고 얘기할 때 중국과 북한이 군사동맹이고 우리는 미국과 군사동맹이라는 점을 의식해서 주눅들 필요는 없다”며 “중국과 의견이 다른 부분이 많지만 같은 부분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민주통합당 송민순 의원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 정부가 원칙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동시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어야 한다”며 “남북간 교류를 통해 근원적 접근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 정부 들어 한번이라도 북한과 진지하게 얘기해 본 적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최고위원 역시 “중국은 국제난민협약 준수와 인도적 차원에서 탈북자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신변 보호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정부가 (북한 이탈주민들과의) 면접교섭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가족들이라도 만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 분들의 가족들이 면접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뚫어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박선영 의원은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연일 단식투쟁을 벌일 정도로 이 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외교통상위는 이날 북한 주민에 대한 강제 북송 중단을 촉구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요청하는 내용의 촉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결의안은 중국 정부의 북한 주민의 강제 북송 방침에 깊은 유감을 표시하고 난민 협약, 고문방지 협약 등 국제협약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또 북한 이탈 주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요청하고,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촉구하는 내용도 결의안에 담겼다.
회의에 함께 참석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경의 주중 대사관과 선양 총영사관에서 실제적인 협의를 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중국 측과 20차례 이상 접촉했고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고는 “(강제 북송이) 엄중한 사안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될 경우 본부에서 주한 중국 대사관에 (결의안을) 전달하고, 북경 대사관에서도 중국 외교부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난민’인가 아니면 ‘불법 월경범죄자’인가
그런데 우리 정부로서는 조금 난감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정부가 탈북자들의 강제 북송을 막기 위해 중국과 접촉을 벌이는 가운데 북송이 단행됐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일 “탈북자 관련 협약 등 국제법 준수 차원에서 탈북자 북송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중국 에 공식적으로 밝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자 북송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는 중국이 향후 탈북자 문제를 단독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봐야하는가, 아니면 단순한 ‘불법 월경범죄자’로 취급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난민’이란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로 정의된다. 그런데 중국은 탈북자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탈출한 불법체류자들’이기 때문에 ‘정치·종교적인 박해로 인해 부득이하게 본국을 탈출한 난민’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입장 역시 북한(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의 말에 따르면 “탈북자 문제는 난민 문제가 아니며 적대세력의 반공화국 제재압살 소동과 우리 주민들에 대한 유인납치책동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시각차가 엄연하기 때문에, 탈북자가 강제 북송되면 결국 ‘정치범수용소로 가거나 총살을 당한다’고 한다. 한국행을 기도하다 강제 북송된 적이 있다는 한 남성 탈북자는 지난 24일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탈북단체 합동 기자회견’에서 “현재 탈북자들이 수감된 것으로 알려진 중국 투먼(圖們) 감옥에 간 적이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또 “평안남도 증산군에 있는 수용소에서만 매년 2,000명의 탈북자가 죽었고, 그 시체를 묻은 무덤을 ‘꽃동산’이라고 불렀다”며 “죽어서라도 마음 편히 가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다”고 설명했다.

당국의 대처가 실효성 있을지는 의문
이처럼 정부와 정치권이 '외교적 압박'을 시사하고 시민·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여론 몰이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것이 실질적으로 중국 정부의 입장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중국에 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 준수를 촉구하는 한편,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유엔인권이사회에서도 강제송환 문제를 제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체포된 탈북자들에게 '한국민증명서'를 발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회에서는 지난 24일 '탈북자 강제북송 저지 결의안'이 채택됐고, 국내 법조인 304명은 긴급호소문을 통해 탈북자 강제송환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법률적 해석으로 중국을 압박하기도 했다. 또 탤런트 차인표 씨를 비롯한 한류(韓流)스타들의 동참도 적극적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탈북자 문제를 인도주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북송 반대 시위를 하는 사진과 설명이 올라왔으며, 관련 소식 계속 재전송되고 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 같은 국내외 여론 확산이 중국 정부의 정책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정부 당국자도 “중국이 체포된 탈북자들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주지 않아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며 “탈북자 송환과 관련해 중국이 국내법을 우선하기 때문에 입장변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해법 찾기가 요원하다”고 어려움만 토로했다. 탈북자 정책에 있어서 중국 정부의 입장이 워낙 완고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오히려 공식 입장발표를 통해 정치화·여론화 하는 것에 대한 강한 불만도 내비친 바 있다.

국제적으로 중국을 압박해야 효과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 중국은 탈북자를 경제적 여건에 따른 '불법 월경자'로 보고 있다. 더불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것은 해당국이 판단해야 하는 문제로 우리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중국 정부가 ‘아니다’고 판단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다자·양자협의를 통한 압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탈북자를 강제 북송하면 한국 내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반중(反中) 여론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중국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탈북자들이 송환되면 중국 정부가 '난민지위'를 인정할 만큼의 박해와 고문을 받게 된다는 점을 중국 정부에 환기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강제송환 금지를 요구하기 전에 중국 당국에 탈북자에 대한 단속을 완화시켜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중국 정부와의 양자협의를 강화해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소장은 또한 ”국제사회의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라’는 요구를 중국이 받지 않으려면, 중국 당국이 먼저 북한에 ‘탈북자를 처벌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점을 양자·다자협상을 통해 강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이미 지난 1982년과 1988년, 난민지위에 관한 국제협약과 고문방지 협약에 각각 가입한 상태다. 때문에 북한으로 돌아가면 모진 학대를 받을 것이 분명한 탈북자들이 이들 협약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당당하면서도 신중한 외교 전략 필요
지난해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이후 북한은 탈북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탈북에 실패한 북한주민이 겪는 고초는 아마 우리로서는 상상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참혹한 학대는 물론 안타깝게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게 당연하다”고 말하면, 글쎄, 너무도 북한을 매도하는 발언이 될까? 이제는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자유와 평화가,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북에서는 아직도 머나먼 얘기라는 현실에 먹먹함을 느낀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에 대한 국제적 여론화가 자칫 중국 정부를 자극해 단속강화를 불러와 중국 내 탈북자들의 신변을 위축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일단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놓고 '조용한 외교'를 탈피한 것은 그래도 칭찬할 만하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중국대사관 앞에서 농성중인 박선영 의원을 찾은 것은 나름의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이 문제는 매우 조심스레 다뤄야 할 예민한 사안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부가 ‘인권’과 ‘외교’ 그리고 ‘삶’과 ‘죽음’의 사각지대에 선 탈북자들을 제대로 도우려면 당분간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치열함만이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오랜 고민 가운데 하나였던 탈북자 문제가 이번 기회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

취재_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