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쟁점으로 떠오른 ‘민간인 불법사찰’
이영호 ‘몸통 발언’에도 불구, 청와대 관련설 여전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29일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과 이인규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을 동시에 소환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최 전 행정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 인물로는 처음으로 검찰에 출두했다.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형사3부장)은 청와대 개입 의혹과 입막음용 금품전달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과 함께 재판을 받았던 이 전 지원관에 대해 장 전 주무관과 비슷한 제안을 받았는지 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속적인 회유 있었다”
검찰은 이 전 지원관이 1차 수사로 징역형을 받은 만큼 소송 과정에서 최 전 행정관 등 청와대 인사들에게 변호사비 대납이나 금전적 도움 등을 받았는지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지원관은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검찰은 최 전 행정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했는지, 장 전 주무관에게 증거인멸 사실을 은폐하는 대가로 금품을 전달한 경위와 누구의 지시였는지 등에 대해서도 확인했다. 앞서 장 전 주무관은 “최 전 행정관이 대포폰을 건네며 증거인멸을 지시하고 재판 과정에서 돈을 건네는 등 지속적인 회유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장 전 주무관은 또 “최 전 행정관의 지시로 이동걸 고용노동부 장관정책보좌관에게 4000만원을 받아 이 가운데 1500만원을 변호사비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 전 행정관은 지난 2010년 7월 검찰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 당시 장 전 주무관에게 사찰 관련 컴퓨터 하드디스크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장 전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건넨 사실이 밝혀졌지만 증거인멸과 연관성이 없다고 보고 기소대상에서 제외됐다.

스스로 몸통이라 주장한 이영호 전 비서관
검찰은 최 전 행정관에 이어 이영호 전 비서관도 피내사자 자격으로 지난 30일 전격 소환 조사했다. 이 전 비서관은 이에 앞선 지난 20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종석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에게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모두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모든 문제는 내가 몸통이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 직후 정치권을 중심으로 '윗선 차단' '전형적인 꼬리자르기'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먼저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주무관은 20일 이영호 전 청와대 행정관의 언급에 대해 "소가 웃을 일"이라고 일축했다. 장 전 주무관의 검찰 조사에 입회한 이재화 변호사도 조사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궤변도 그런 궤변이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변호사는 이어 “검찰이 실체를 밝히려고 하는 의지를 확인했다"며 “(실체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장 전 주무관은 이날 오전 9시50분께 검찰에 출석한 뒤 오후 11시10분까지 13시간여 동안 검찰 조사를 받았다. 장 전 주무관은 그동안 순차적으로 공개한 폭로물의 사실관계에 대해 검찰에 적극적으로 진술하며 이와 관련한 녹취파일과 입증자료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합진보당 "임태희 구속해야!"
상황이 이렇게 되자 통합진보당은 지난 29일, 민간인 불법사찰에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루됐다는 의혹과 관련 “검찰은 임 전 실장을 즉각 소환해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합진보당 당 대표단과 비례대표 후보들은 이날 오전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 전 실장은 모든 증거인멸의 직접적 담당자로 지목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불법사찰 증거인멸 공작 사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고 지난 27일 폭로했다"며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 자체만으로도 경악할 일인데 심지어 증거인멸을 조직적으로 지시하고 그 대상자들을 철저하게 관리해 왔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건의 실체가 청와대고 대통령의 직접적인 개입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이제 이 대통령이 직접 답해야한다"며 “만약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 대통령은 즉각 사퇴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19대 국회 개원 즉시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통해 민간인 불법사찰의 모든 사실을 밝히고 대통령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참여연대 역시 이날 “수사대상중 한명인 권재진 법무부 장관을 교체하라”고 촉구에 나섰다.
참여연대는 “민간인 불법사찰·증거인멸 과정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한 정황이 폭로되고, 청와대 VIP에게 보고했다는 발언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민간사찰을 직보한 정황도 나왔다”며 “사실이라면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거슬러 국민들을 감시하는 데 공권력을 남용하고, 다시 공권력을 동원해 권력남용의 증거를 은폐하는 일을 승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어 “이번 사건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철을 밟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이 전 비서관을 통해 민간사찰 정보 보고를 받았는지, 측근들의 관여 여부를 알고 있었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여연대는 권재진 법무부장관을 포함하여 30명의 ‘민간인 불법사찰·증거인멸 관련 수사(조사) 대상자 명단’을 공개해 관심을 모았다. 과연 이 명단에 진짜 몸통이 숨어있을지 매우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취재_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