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야소(與大野小) 정국 형성 되었어도
‘민간인 사찰’ ‘MB친인척 비리’ 등은 여전한 골치

박근혜 식 ‘맞춤형 복지’ 靑와 마찰 빚을 수도
대선 다가올수록 당·청 결별 가능성 높아

4.11 총선에서 승리한 다음날인 12일 청와대 분위기는 오랜만에 밝았다. 새누리당 패배 시 야당의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국회청문회 요구와 공세가 있을 것으로 우려했던 직원들은 종일 피어나는 웃음꽃을 감추지 못했다. 여권은 당초 예상을 뒤엎고 단독 과반의석 확보에 성공, 오는 6월부터 시작되는 19대 국회에서도 ‘여대야소(與大野小)’ 정국을 이어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임기가 10개월밖에 남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놓인 정국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로 여권의 확실한 미래권력으로 부상한 박근혜 위원장과의 관계 설정이 매우 중요해졌다. 총선 정국에서 잠시 잠잠해진 각종 비리 의혹이 다시금 여론의 도마에 오르면, 박 위원장의 말 한마디로 청와대의 명운이 결정될 수도 있다. 또 그동안 박 위원장이 꾸준히 주장한 이른바 ‘맞춤형 복지’가 현 정부 정책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점도 고민스럽다. 앞으로 8개월 남은 대선레이스. 과연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함께 할 수 있을까?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
총선은 끝났고,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은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당초 야권의 승리가 예상됐고 방송 3사의 출구조사가 11일 저녁 발표될 때까지만 해도 이 같은 분위기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개표 결과 새누리당이 예상을 깨고 원내 1당의 지위를 확보하는 선전을 했기 때문이다. 야권이 ‘정권심판론’을 모토로 내세우고 이번 선거를 치렀던 만큼 새누리당이 기대 이상의 국민 지지를 확보하면서 이 대통령도 임기 말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추진력을 갖게 됐다.
이에 고무된 탓인지 선거 정국에서 줄곧 말을 아낀 이명박 대통령은 총선 바로 다음날인 12일, 총선 결과에 대해 이례적인 논평을 내 이목을 끌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티타임을 가지면서 “이번 총선 결과는 어려울 때일수록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이같이 말하고, “남은 임기동안 공직자들은 민생 챙기기를 위해 비상기간이라는 자세로 업무에 임해주고 특히 청와대가 모범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도 “민생 문제의 핵심은 물가 안정과 일자리 창출”이라며 “앞으로 국정 역량을 민생 챙기기에 쏟아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는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로 청와대가 안도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험한 꼴은 피하지 않았느냐”며 “만약 야당이 승리했으면 민간인 사찰에 대한 국회청문회를 한다면서 VIP(이 대통령)야 못 부르겠지만 조금이라도 관련된 직원들은 모두 불러들일 수도 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승리가 곧바로 위기에 빠진 청와대를 구해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미 총선에 앞서 박 위원장이 승리 일성(一聲)으로 불법사찰방지법 제정을 외친 것이 심상찮다. 이것이 새누리당과 청와대 간의 선긋기가 아니냐는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써는 당연히 박 위원장과의 회동을 통해 임기 말 국정운영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 정권과 줄곧 거리를 뒀던 박 위원장이 임기 말 청와대와 굳이 ‘국정 동반자’ 모양새는 만들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당·청 결별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선거는 당을 중심으로 치른 만큼 이번 선거에서 선전한 것을 청와대의 공으로 보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더 소원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좀 더 잘했더라면 수도권에서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새로운 당청 관계 불가피
그러나 대선이 다가올수록 야권의 공세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은 이 대통령과 박 위원장 모두에게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비록 새누리당이 승리한 총선이지만 18대와 달리 야권이 의석수를 크게 늘리면서 원 구성 협상부터 여야 간 치열한 정국 주도권 다툼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현 정부와 관련된 청문회 등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이밖에도 민주통합당(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연대’는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이 대통령 측근·친인척 비리, 내곡동 사저 등 각종 의혹에 대한 파상 공세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예상되는 야권의 공세에 대해 박 위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제주해군기지 등 이해가 맞는 사안은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고 사찰 문제 등에는 각을 세우는 ‘투 트랙’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어쨌든 당명을 변경하면서까지 현 정부와의 차별화를 내세우고 총선을 치렀기 때문에, 당청관계의 새로운 역할 모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 정부의 실정을 무조건 옹호하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불법 사찰 등에 대해서는 이미 분명한 의지를 밝힌 만큼 새로운 당청관계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일단 당·청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은 당에 협조를 구하며 유연히 대처한다는 계획이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을 맞아 야당의 정치적 공세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여당 지원 없이는 국정 운영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친이계가 대거 낙천 또는 낙선해 세력이 약화된 점도 당·청 관계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을 필두로 전재희·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윤성·강승규·권택기 의원 등, 친이계 핵심 인사들은 18대를 마지막으로 국회를 떠나게 되었다.

불편해도 ‘상호 윈-윈’하는 공존 전략 모색할 듯
새누리당 역시 청와대와 무조건 대립각을 세울 수는 없는 없다. 당장 총선 공약으로 복지 확대 공약을 내건 만큼, 현 정부와의 원활한 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남은 기간 동안 이 대통령이 외교 및 안보에 전념하고 대권 후보의 위상을 강화한 박 위원장이 국내 정치를 책임지는 ‘역할 분담’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그렇다해도 서민에 대한 복지 정책이나 대기업 지원 정책 등에 있어서는 새누리당이 청와대와 거리를 둘 개연성이 높다. 총선을 거치면서 새누리당은 복지 확대를 약속했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재정 건전화가 우선이라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대립해왔다. 새누리당이 법인세와 소득세 증세를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시장경제 확대 차원에서 감세를 추진해온 점도 갈등 요소다.
하지만 청와대로써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 대통령의 레임덕이 분명 가속화를 겪을 것이기 때문에, 대선 국면에 접어들수록 새누리당의 ‘입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측된다. 어쩌면 19대 국회 출범과 함께 민간인 불법사찰, 친인척과 측근 비리, 퇴임 후 사저 논란 등을 소재로 당이 청와대에 대해 미리 '고삐'를 죌 수도 있다. 박 위원장도 총선이 끝나자마자 “빠른 시간 안에 ‘불법사찰방지법’ 제정을 비롯해 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철저히 바로잡고 다시는 국민의 삶과 관계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분명히 선을 그을 것은 긋겠다는 뜻”이라고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전한다.
 
복지와 일자리 강조
실제로 박근혜 위원장은 총선 다음날부터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이 총선 과정에서 이미 내놓은 정책으로 “국민들의 나이에 따라 필요한 복지혜택을 맞추겠다”는 박 위원장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바탕으로 한다. 그 내용은 복지와 일자리, 경제민주화가 중심으로 현 이명박 정부의 복지 정책과는 약간 궤를 달리한다. 박 위원장은 앞서 “새누리당의 복지정책은 포퓰리즘이 아니고 경제정책의 중요한 한 축으로 복지와 성장이 선순환을 해야 한다”며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나라살림에 맞는지, 돈은 얼마 들고 가능한지를 고려하고 추진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박근혜 식 맞춤형 복지의 구체적 정책들은 다음과 같다. ▲만 05세 양육수당·보육비 전 계층 지원 ▲저소득층 방과 후 학교 자유수강권 확대 ▲사병월급·사병수당 2배 인상 ▲새로운 청년 취업시스템 도입 ▲전세자금 이자부담 경감 ▲비정규직 차별 개선 및 사내하도급 근로자보호 법률 제정 ▲중증질환 100% 건강보험 적용 및 치매노인 장기요양보험 확대 ▲대기업 고용형태 공시제도 도입 ▲대형유통업체의 중소도시 진입규제 ▲75세 이상 노인 완전·부분틀니 급여 제공 등이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 복지정책의 실천은 19대 국회가 열리는 데로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그렇지만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 소요 재원이 89조원(5년간)이고 복지분야 소요 재원이 28조2000억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공약을 그대로 이행하려면 올해 말 ‘예산 정국’에서 현 정부와의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재원조달은 추가 증세 없이 세원을 늘리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한 바 있다.
박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향후 화두로 ‘화합’과 ‘민생’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갈등과 분열”이라며 “국민통합으로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모든 세대와 계층을 다 끌어안고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당을 정상화하겠다”며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 당을 정상체제로 운영하고, 민생문제 해결과 공약 실천을 위한 실무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MB 레임덕’ 박근혜 위원장에게도 부담
취임 후 줄곧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둬 왔던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오는 12월까지 대선을 8개월 남겨둔 현재, 쉽지 않은 임기 5년차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가 안정과 일자리 확대 등 민생문제에 집중하면서 임기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일을 하다가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찌만 총선 후 불어올 정치 후폭풍은 분명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번 선거의 승리로 ‘박근혜 대세론’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된 것도 이 대통령으로서는 편치 않은 부분이다.
그러나 이미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이 대통령의 레임덕은 박근혜 위원장에게도 큰 숙제다. 아마도 당분간은 새누리와 청와대의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는 가운데 대선 정국이 본격화되면, 본격적인 ‘거리 두기’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임기 말 청와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될 것이다. 이미 청와대의 정무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쨌든 ‘정권재창출’을 공통 목표로 ‘미우나 고우나’ 서로 공존해야 할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관계 맺기는, 향후 대선 가도에서의 매우 흥미로운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취재_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