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연예계는 ‘사생팬’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그룹 ‘JYJ’의 사생팬 폭행 논란과 함께 드러난 사생팬들의 실태는 충격적이다. 스타에게 팬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라지만 스타를 향한 애정이 집착으로 변하는 순간, 팬은 더 이상 팬이 아닌 적이 될 수도 있다. 스타를 향한 삐뚤어진 사랑, 도를 넘어선 사생팬들의 실태와 논란을 들여다봤다.

드러난 사생팬의 실체
동방신기 멤버였던 김재중, 김준수, 박유천은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동반신기를 탈퇴한 후 따로 ‘JYJ'라는 3인조 그룹을 결성했다. 지난 3월 JYJ는 여성 팬 폭행 논란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논란이 된 10여분 분량의 음성파일은 이들이 JYJ를 결성하기 전인 2009년 동방신기의 해체 무렵 녹음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김재중의 목소리가 녹음된 이 음성파일은 택시를 고용해서 하루 종일 자신들을 쫓아다니는 사생팬들에게 "XX년" 등의 욕설과 폭언을 반복하고 있다. 또 김재중이 팬들에게 손찌검을 하는 '퍽' 소리, 맞은 팬들의 신음소리도 담겼다.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사생팬은 팬이 아닌 스토커이며 가수의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팬에게 욕설과 폭행은 지나치다"는 의견 등이 맞서며 논란이 일고 있다. 또 JYJ 사생팬들의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적어놓은 한 커뮤니티의 게시물이 인터넷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 글에는 '생리혈 모아서 오빠들에게 선물하기' '멤버 가방 속에 속옷 넣기' '가족들 주민번호 캐서 PC방에서 사용하기' 등 다양한 사생활 침해 내용이 적혀있다.
사생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기 위해 밤낮없이 쫓아다니며 생활하는 극성팬을 말한다. 사실 사생팬의 역사는 아이돌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아이돌 그룹들이 인기를 얻으며 그들을 조직적·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이 형성됐고 스케줄뿐만 아니라 소속사나 숙소, 집 앞까지 찾아가 ‘오빠’를 기다리는 팬들이 생겨났다. ‘스타의 사생활을 쫓는 팬’이라 하여 팬들 사이에서 ‘사생’이라 부르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팬의 한 종류로 불리게 된 것이다. 웬만한 인기 있는 그룹은 밤새도록 숙소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사생팬들 때문에 몇 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했을 정도로 당시에도 사생팬들의 극성은 대단했다. 사생팬의 존재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유령처럼 떠돌 뿐 알려진 적이 없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통해 밝혀진 사생팬들의 실태는 가히 충격적이다.

뺨을 때리면 자신을 기억할 것 같아서…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JYJ 멤버 박유천이 한 사생팬으로부터 뺨을 맞는 영상이 게재돼 네티즌들의 눈길을 모았다. 영상 속 박유천은 헤어숍 앞에 몰려든 많은 수의 사생 팬들 사이를 지나가다 이 같은 봉변을 당했다. 한 사생팬이 박유천의 뺨을 때리자 그는 뺨을 움켜쥔 채 자신을 때린 팬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이동한다. 그의 따귀가 때려지는 순간 주위에 있던 팬들도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계시자에 따르면 박유천의 뺨을 때린 사생팬은 그 이유에 대해 "뺨을 때리면 자신을 기억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뺨은 도대체 왜 때리는거야? 갑자기 지나가다 뺨 맞은 박유천도 어이 없을 듯” “저 정도구나” “사생팬은 정말 팬인걸까? 스토커라고 봐도 될텐데?”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사생팬들의 정도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며 그로 인해 해당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인권 침해와 정신적 고통이 매우 크다. 자신의 속옷을 연예인의 가방에 넣어놓는다거나 늦은 밤 스타의 데이트 장소에 쫓아가 “내일 아침 일찍 방송이 있으니 이제 그만 보내 달라”라고 말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스러울 정도다. 숙소 열쇠를 복사해 아무렇지도 않게 숙소에 드나들고 주차장에 CCTV를 설치해 ‘오빠’가 몇 시에 집을 나가고 들어왔는지 체크하는 등 범죄 수준에 가까운 사생활 감시 행위가 이루어진다. 연예인의 뺨을 때리거나 여름 내내 손톱을 길렀다가 해당 연예인에게 일부러 상처를 내 살점이라도 갖겠다는 심리는 ‘엽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면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연예인을 쫓는 방법도 다양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연예인들을 쫓는 팬들이 많아지자 사생팬들을 전문적으로 실어 나르는 ‘사생 택시’가 생겨났다. 사생팬들을 태워 연예인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 사생팬 네 명을 태우고 반나절 동안 받는 돈은 20만원 정도, 하루 수입은 40, 50만원 정도다. 한 번에 목돈을 챙길 수 있고 기획사나 방송국, 미용실, 숙소에서 대기만 하고 있어도 요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택’만 전문적으로 하는 택시가 서울에만 100여 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팬들의 연령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며 사생팬들에게 돈을 주고 정보를 얻는 ‘사생 스폰서’도 등장했다. 보통 시간적 여유가 없는 직장인 팬들로 사생팬들에게 택시비나 밥값을 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비롯해 동선과 만나는 사람, 옷차림, 표정까지 사진과 문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받는다. 받는 금액에 따라 사진 장 수나 정보의 질이 결정된다고 하니 웬만한 심부름센터를 방불케 한다.

사생팬 처벌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경범죄 처벌법 개정안에 ‘지속적 괴롭힘(스토킹)’이란 항목이 추가됐다. 내년 1월 1일부터 발효되는 이 개정안에 따라 사생팬들이 저지르는 스토킹도 처벌 가능 대상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하지만 연예인 및 기획사 관계자들은 “사생팬은 대처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말한다. 범죄 수준에 가까운 사생활과 인권침해에도 불구하고 사생팬을 고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스타가 되기 전부터 보아온 골수팬들이 많고 무엇보다 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 자체가 고발이나 법적 처벌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다. 과연, 사생팬들과 연예인이 지금까지 치러온 ‘소리 없는 전쟁’이 막을 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취재_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