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꿈꾸는 더 나은 세상
수잔 비에르(Susanne Bier)의 <인어 베러 월드(In a better world)>




평화를 살아간다는 것. 삶으로 살아내는 ‘평화’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선택적 여백을 즐기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우리들 삶 자체가 그간 살아온 순간들의 켜켜이 쌓인 ‘관계’의 연장선이라 한다면, 평화의 삶이란 다분히 그 기폭의 치열함과 맞닿아 있다. 그 속에서 ‘나와 너’의 근원적 세계가 날마다 충돌하며 거듭나기를 지속한다. 지금 우리는 마틴 부버의 표현대로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 ‘나와 너’의 진정한 만남(Begegnung)으로 맺어져 평화의 삶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덴마크의 여류감독 수잔 비에르(Susanne Bier)의 <인어 베러 월드(In a better world)>에서 그 질문들은 모아질 수 있다. 2011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 부문 수상작인 영화는 일상에 만연한 폭력과 야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몇 개의 양상을 통하여, ‘보다 나은 세상 In a Better World'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염원을 그리고 있다.

의사인 안톤(마이클 페르스브란트)은 아내 마리안느(트리네 뒤르홀름)와 별거 중이고,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의료봉사를 하며 혼자 살아간다. 10살 난 그의 아들 엘리아스(마쿠스 리가르드)는 학교에서 상습적인 따돌림과 폭력을 당하고 있는데, 어느 날 전학 온 크리스티안(윌리엄 요크 닐센)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나면서 둘은 급속히 친해지게 된다. 최근 암으로 엄마를 잃은 크리스티안은 가족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고, 평소 온순하고 침착한 엘리아스에게 자신만의 분노 해결법을 가르치게 된다. 한편, 안톤은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의 생활은 늘 새로운 딜레마의 연속이다. 평소 아프리카 의료인들과 그의 아들들에게 공격적이고 폭력적이어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라고 가르치는 철저한 평화주의자지만, 막상 본인에게는 의료현장에서 직면하게 되는 복수와 용서의 딜레마가 마음을 어렵게 한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현실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복수와 용서, 결코 선택하기 쉽지 않은 이 두 갈래 길 앞에 무력한 인간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영화는 이 땅에 만연한 폭력의 구조 속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누구나 성장통이라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어린 아이들의 놀이터 싸움으로부터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따돌림과 집단 폭력, 일방적인 피해를 당하고 분노하는 이들이 벌이는 또다른 복수극들까지... 세상은 이렇게 작은 전쟁들이 큰 전쟁으로 번져가고 있으며, 어린 아이의 폭력이 무자비한 칼부림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웃을 살해하는 이들의 정신구조까지 관통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렇게 불합리한 폭력의 세상에서 안톤이 보여주는 행적은 그가 여전히 폭력의 궤적들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노선을 긋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폭력에 맞대응하지 않는 비폭력이며 평화의 삶을 일상에서부터 추구하는 일이다.

폭력의 세상에서 늘 줄다리기처럼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지만, 영화 속 안톤과 그의 행적을 통해 세상은 조금씩 ‘빛’을 얻어간다. 자녀들을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돌아서게 하고, 긴 호흡과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전한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회복은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싶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가? 카피르(Kaffir) 사람이 쓰는 신선한 인사말로 그 속내를 나누고 싶다. 그네들은 사람을 만날 때 자기 몸을 상대 몸에 꼭 붙이면서 ‘자네가 보이네!’라고 말한다. 다른 이웃이 내 시야 속에서 ‘그것’이 아닌 ‘너’로 보이는가.

■ 영화정보
제목: 인 어 베러 월드(In a better world)/ 113min/ 덴마크, 스웨덴
감독: 수잔 비에르 Susanne Bier
배우: 마이클 페르스브란트, 트리네 뒤르홀름, 울리히 톰센?